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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여행] 치앙마이 여행 - 소수민족 카렌족을 만나다해외여행 2020. 7. 6. 00:35
소수민족 카렌족을 만나다
내가 처음 태국 여행을 가자고 했을때 아내는 동남아 여행을 왜 가냐고 나에게 물었다. 아내는 지난 대학시절 필리핀에 봉사활동을 갔다 온 후 동남아에 대한 선입견이 좀 있었는데 아내의 기억에 동남아는 지저분하고 질서가 없는 안전하지 않은 나라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아내를 무작정 끌고 처음 간 곳이 태국 방콕이었다. 아내는 높은 빌딩들이 즐비한 방콕에 대한 첫인상이 꽤나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첫 숙소로 묵은 반얀트리 호텔은 아내의 인생호텔이 되어 버렸다. 어딜 가나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이해주는 태국 사람들의 미소를 아내를 여행 이후에도 잊지 못하였고 우리는 그 다음해 여름 다시 방콕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번에 세번째 태국 여행은 수도 방콕과는 좀 떨어진 전혀 새로운 분위기일것만 같은 치앙마이로 떠났다. 치앙마이 여행을 계획하면서 아내에게 치앙마이에 가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을때 아내는 주저없이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호텔이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태국 관광에서 빠질 수 없는 사원은 안 가고 싶다고... 태국에서 사원을 안 가면 도대체 어디를 가야한다 말인가 난 고민에 빠졌고 어쩔 수 없이 시장 위주의 동선과 카페 및 호텔 휴식을 일정으로 하는 여행을 계획했었다. 드디어 우리는 치앙마이에 도착했고 첫 호텔에서 간단하게 식사 후 잠자리에 들었는데 갑자기 아내가 치앙마이에 왔으면 롱넥족을 만날수 있는건가 라며 나에게 가능하면 만나고 싶다고 한다. 소수민족이면 보통 산속에서 생활할텐데...가기엔 좀 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내일 알아 본다하고 잠에 들었다.
그 다음날 호텔 컨시어지를 살펴보니 롱넥족을 만나는 현지 투어가 꽤 많이 있었다. 대부분은 코끼리 투어와 함께 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카렌족(롱넥)만 만나볼 수 있는 반나절 투어를 신청하게 되었다. 사실 갑작스러운 결정이어서
언론을 통해서만 가끔 보았지 카렌족이 왜 목에다가 그렇게 무거운 링을 차고 다니는지 알지 못했다. 다음은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가져온 정보이다.
카렌족은 티베트버마어족으로 분류되나, 언어학상의 위치는 아직 확정되어 있지 않다. 미얀마에 있는 인구는 약 200만 명이라고 한다. 미얀마 남동부에 분포하며, 최대의 소수민족으로서 까렌주를 형성하고 있다. 19세기 중엽까지는 원시적인 농업 ·수렵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을 뿐, 중요한 민족집단은 아니었으나 영국령이었을 때에는 구미의 선교사들에 의해서 그리스도교화되어 상당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들은 그 뒤 적극적으로 영 ·미인에게 협력하였으므로 미얀마인들로부터 식민지주의자의 주구로 취급당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얀마 독립 당시에 자치령의 설립을 요구하며 미얀마 중앙정부와 항쟁하였다. 현재도 양자간의 적대감정은 미얀마의 정치적 불안정 요인의 하나이다. 또한 까렌족 가운데서 역사적 배경을 달리하는 붉은 까렌족은 정치적으로 다른 방향을 취하여 까야주를 만들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록 영어로 진행되었지만 가이드가 동행했기 때문에 카렌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카렌족은 미얀마 14개 소수민족 중 인구 구성비는 7%정도 되는 민족인데 다수 민족인 버마족이 대부분 불교를 믿는 반면 카렌족은 기독교인구가 대략 30%에 이른다고 한다. 카렌족은 다른 카친, 샨, 라카인, 몬족 등 미얀마의 소수 민족들과 함께 미얀마가 영국으로 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왔고 그 댓가로 미얀마 독립 후 자치와 독립을 약속 받았다. 하지만 약속을 했던 아웅산 장군이 암살되면서 그 약속은 무효가 되었고 그 때부터 카렌족은 미얀마 정부를 대상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한때는 수도인 양곤을 함락 직전까지도 기세가 높았으나 결국 카렌족은 태국 국경 근처까지 밀려나게 되었고 2001년 카렌족을 이끌었던 흐투 형제가 체포 되면서 독립운동은 그 기세가 꺽기게 되었고 그 이후 미얀마에서 핍박을 피해 도망친 카렌족들이 태국으로 넘어오게 되는 일이 많이 생겼다. 그러나 언어 장벽의 문제로 태국에서 정착하기 쉽지 않아 카렌족은 산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관점으로 본다면 카렌족은 불법이민자들인 것이다. 태국 정부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어 카렌족을 위한 이런 저런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카렌족의 생활은 어렵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이런 살길이 막막한 카렌족들에게 관광객을 대상으로 기념품을 팔아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든 작은 공동체였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남편들은 낮에 일을 나가 돈을 벌고 여자들과 미취학 아이들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사진도 찍어주고 기념품을 팔아 생활비를 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다분히 상업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살아가야만 하는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엔 카렌족이 대부분이었지만 다른 소수민족들도 더러 있는 듯 했다. 다행히도 이런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카렌족 부모들은 자녀들을 근처에 있는 태국 학교에 보낼 수 있다고 하고 아이들도 교육을 받는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하니 그나마 마음이 좀 놓이기는 했다. 우리와 함께 움직인 관광객 대부분은 마을만 훅 둘러보고 사진만 찍지 물건을 구입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와 아내는 한 집에서 카렌족이 목에 채우는 링도 해보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무거웠다. 도대체 이 무거운 링을 왜 하는 걸까? 가이드가 나의 궁금증을 눈치챘는지 이유를 설명해 준다. 카렌족은 고산족인데 낮에 남자가 사냥을 나가면 마을에는 여자와 노약자만 남아있게 되었고 남자들이 없는 시간에 혹 야생 동물들이 마을에 내려와 피해를 줄수 있어 가장 취약에 목에다가 쇠고랑을 채웠다는 것이다. 특히 호랑이 같은 맹수는 목부터 물기 때문에 목에다가 어릴때 부터 채우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잘 못 알고 이었던 사실 한가지는 카렌족의 목이 길어지는 것이 아니란다. 쇠고랑의 무게 때문에 목 아래 쇠골이 주저 않자 목이 길게 보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카렌족의 삶이 참 피곤했겠다. 가이드에게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 물어보니 처음부터 사진찍히는 조건으로 이곳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진 찍고 팁을 주어야 하느냐 물으니 그런 것은 없고 그냥 물건을 사주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나와 아내는 한집에서 나무 목각 인형을 사고 또 다른 집에서 마그넷을 구입했다. 그들에게는 삶의 터전인 그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조금 미안했다. 공식적인 팁은 안 준다기에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작게나마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이것 저것 구입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도 난민 문제를 쉽게 해결하지 못하듯이 태국 정부로서도 카렌족을 돕는 것에 한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태국 정부가 카렌족을 잊혀진 소수민족으로 무시하거나 다시 미얀마 산속으로 추방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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