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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노이 여행 :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 여행
    해외여행 2020. 7. 6. 14:27

    하노이 여행 :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 여행

    어머니는 여행을 좋아하신다. 하지만 집밖에도 나가기 싫어하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한번도 해외로 여행을 떠난적이 없으셨다. 어머니에게 여행가고 싶으신 곳이 있냐 물어보니 어머니 친구들이 가장 많이 다녀온 하롱베이에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급하게 하노이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일단 하노이에 대해서 알아보자. 아래 내용은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참고한 내용들이다.

    하노이는 ‘두 강 사이에 있는 도시’라는 뜻으로 1831년 구엔 왕조에 의해 불리워졌던 이름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하노이라는 이름 이전에는 레왕조(黎,1428~1787) 말기 '통킹'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945년 9월 2일 베트남의 공식 수도가 되었으며, 2010년 9월 도시건설 1,000년을 맞이한 유서 깊은 도시이다.


    역사

    하노이는 기원전 3,000년 경부터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꼬 로아 성채는 기원전 200년 경으로 추정되는 최초 주거지로 평가받고 있다. 하노이가 베트남의 중심 도시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하노이의 지리적 위치 덕분이었다. 7세기 무렵 당나라가 지배하던 중국은 남중국해와 활발한 교역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하노이가 원난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교역로에 위치해 있어 자연스레 주요 거점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안남도호부까지 설치되어 활발한 교역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었던 하노이는 당 말기가 되면서 중국이 다른 새로운 교역로를 개발함에 따라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잃었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첫 번째 리 왕조(1009~1225)에 의해 ‘떠오르는 용’이라는 뜻의 탕롱으로 불리우며 베트남의 수도가 되어 마지막 왕조인 구엔왕조(1802~1945)가 집권한 1802년까지 베트남의 수도이자 정치행정 중심지로 남게 되었다. 이후 1902년 프랑스가 침략하여 지배하던 시절에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수도가 되었으며 1940년~1945년 일본점령기에도 여전히 행정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1945년 9월 2일 베트남 민주공화국(북 베트남)이 하노이에서 독립 선언을 한 이후, 하노이는 베트남 민주공화국(북 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다. 1975년 남베트남의 붕괴 이후 북베트남이 세력을 확장하여 1976년 7월 2일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하노이가 수도로 정해졌고, 2008년 8월 하떠이 성을 통합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기후

    하노이의 기후는 전형적인 아열대 습윤기후이다. 여름에는 덥고 습하지만, 겨울에는 비교적 시원하고 건조한 특징을 보인다. 여름은 5월에서 9월까지 이며, 11월 부터 이듬해 3월 까지 지속되는 겨울에는 다소 건조한 날씨가 계속된다.


    경제

    1954년 이후 공업이 발달하여 공구, 발전기, 합판, 직물, 화학제품 등을 주로 생산해왔다. 이후 하노이는 1990년대 이래 급속한 경제 성장을 경험하였다. 1991년부터 1995년 동안 19.1 %, 1996년~2000년에는 연평균 15.9%, 2001년~2003년에는 20.9%에 달하는 성장율을 내기도 하였다. 관광, 금융, 부동산, 은행업이 하노이의 경제 발전의 주요한 축이다. 또한 교통 중심지로서 주변 도시들과 연결성이 높아 무역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하이난은 철도를 통해 하이퐁 항[海防港], 중국 윈난성[雲南省]의 쿤밍[昆明], 호찌민 시와 이어지며 홍강을 통해 배편으로 베트남 북부의 대부분의 지역까지 이어지며 대양으로 나가려는 뱃길로도 이용된다.


    문화와 관광

    하노이의 주요 관광 명소로는 기원전 3세기에 세워진 코로아 성채, 하노이 문묘, 하노이대학교, 혁명박물관, 군사박물관, 하노이 호찌민박물관 등도 유명하다. 과거 프랑스 지배의 영향으로 프랑스 풍 건물을 많이 볼 수 있어 ‘아시아의 빠리’라고도 불리며, 대표 건축물로는 대통령궁,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 베트남 은행, 성요셉 성당, 소피텔 메트로폴 호텔 등이 있다.

     

     

    하노이에 대한 첫 인상은 복잡함이었다. 도로마다 가득찬 오토바이 행렬이 길을 건너야 하는 나에게는 위협적이었다. 도대체 한나라의 수도인 곳인데 8차선 도로에 신호등이 없다는 것을 이곳에 오기 전에 상상이나 했겠나 싶다. 그렇게 1주일을 하노이에 머물며 나도 모르게 점점 하노이의 일상에 물들어 갔다. 신호등 없는 도로를 건너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하게 느껴졌고 나에게 달려오는 오토바이도 더 이상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몇일을 지켜보니 나의 기준에 무질서하게 보였던 것들이 나름 그들만의 약속안에서 질서있게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왜 나의 기준으로 그들을 평가했었는가 부끄럽기까지 했다. 이 나라에 왔으면 이 나라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했지만 난 나의 잣대로 그들을 평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2-3일정도만 머물렀다면 여전히 하노이는 무질서한 복잡한 도시로 기억되었을 것이지만 나에게는 하노이와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적당한 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

    하노이의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며 어머니 말씀에 예전에 우리나라 모습과 많이 비슷하다고 하셨다. 이젠 우리가 잘 먹지 않는 음식들을 그들은 여전히 먹고 있고 우리가 대충 해 먹었던 비위생적인 방식으로 그들은 지금 먹고 있다. 우리가 찾아갔던 기찻길 마을도 그렇다. 좁은 기찻길 사이로 촘촘히 세워진 집들에서는 여전히 우리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었고 하수도 문제 이겠지만 그 길가에서는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요상한 냄새들도 마치 우리의 옛 모습같았다.

     

    어머니와 함께 경험한 하노이는 젊은 도시였고 역동적이었으며 미래 지향적이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해보고자 하는 젊은 야망있는 젊은이 같다고 해야할까. 올 겨울 1월까지만 해도 베트남 여행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바람을 뛰어 넘어 광풍이었다고 할수 있겠다. 박항성 감독의 영향으로 스포츠 채널에서는 베트남 국가대표의 축구 경기를 방송으로 내보내기도 했고 국민들은 결과에 귀를 기울이며 베트남 전쟁의 아픈 과거를 청산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현재 국민들의 베트남에 대한 반응은 싸늘하게 식었다. 코비드19상황에서 베트남 정부가 우리 국민들에게 보여준 행동에 대하여 분노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못한 언론의 책임도 있는 것 같다. 어쨋든 호이안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베트남 여행의 특수는 어느정도 잠잠해 질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베트남 여행은 매력적이다. 베트남은 54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이기 때문에 문화적 다양성을 방문하는 지역마다 다르게 느낄수도 있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며 먹는 음식 문화, 의복, 종교 등 오랫동안 한민족이라고 굳게 믿고 살아왔던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코비드19상황이 마무리되면 베트남으로 향하는 비행 티켓을 구매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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