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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낭여행] 페낭 알아보기- 말레이시아역사,부미푸트라,말레이시아회화,페낭 가볼만한 곳, 말레이시아 여행 팁
    해외여행 2020. 7. 5. 19:07

    1. 말레이시아 역사

    말레이시아에 사람이 거주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8,000년 경으로 보고 있는데 이들은 주로 이동식 화전 농업에 종사했다. 기원전 1,000년 경 강가나 해안가를 따라 어로 행위를 하는 철기 사용자들이 출현하였고, 2~3세기에 들어서 북부 께다(Kedah)지역을 중심으로 중앙집권화된 왕국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초기 말레이인들의 문명은 인도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이들의 문화는 힌두교와 불교가 융합된 형태를 띠었다. 인도네시아 역사와 다소 공유되는 스리위자야 왕국이 7~8세기 경 성립되었다. 스리위자야는 말라카 해협의 무역로를 통제하며 부를 축적하였다.

     

    14세기 말 빠라메스와라(Parameswara)는 말라카(Melaka)왕국을 건국하였고, 이슬람지역과 무역을 위해 직접 이슬람교로 개종하였다. 15세기 말라카왕국은 아랍인, 중국인, 인도인들의 무역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1511년 향신료를 차지하기 위해 포르투갈이 침략하였고 포병부대에 의해 말라카가 함락되였다. 잔존세력들은 조호르(Johor) 지역으로 이동하였는데 포루투갈은 거점인 말라카 지역 이외의 지역까지는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 이후 말레이의 각 지역들은 술탄이 지배하는 구조가 되었다. 17세기는 인도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중인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네덜란드가 말레이시아에 진출해 포루투갈을 몰아냈지만 나폴레옹의 본국 침략으로 인해 세력이 약해졌다.

     

    영국은 18세기 후반부터 말레이반도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1786년 영국은 뻬낭(Penang)을 점령한 후 조지타운(Georgetown)을 건설하였고, 1819년에는 레플스(SirStamfordRaffles)에 의해 싱가포르에 영국 무역항이 건설되었다. 1824년 네덜란드는 말라카를 영국에 내어주는 대신 수마트라와 말레이반도 이남지역의 모든 영토를 통제하는 조약을 영국과 맺었다. 그러나 영국 동인도회사는 해안과 반도의 섬 지역만 통치했을 뿐이었지 말레이반도 내륙 지역에는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1941128, 일본은 말레이시아를 점령했고, 이듬해 131일 영국군은 싱가포르를 포기했으며 215일 영국군은 일본군에게 항복했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말레이시아로 재진주한 영국은 1946년 싱가포르를 제외한 말레이시아 전역을 하나로 묶는 말라야연합(MalayanUnion)안의 도입을 시도했다. 말라야연합이 술탄의 권력을 박탈하고, 화인과 인도인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말레이인들은 이에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결국 194821일 말라야연방(FederationofMalaya)이 결성되었다. 말라야연방은 중국인 차별정책을 실행하였고 대다수 중국인으로 구성된 싱가폴은 독립을 선포한다.

    2. 부미푸트라 [ 인종차별정책 ]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가 주를 이루는 나라인데, 일단 말레이계는 원주민이다. 그런데 중국계와 인도계는? 이미 과거부터 동남아시아엔 중국계 상인들이 꽤나 광범위하게 퍼져있었고, 이들 중 일부는 말레이시아에도 정착해있었다. 게다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당시 말레이시아를 점하고 있던 영국은 자신들의 또다른 식민지였던 인도와 홍콩에서 노동자들을 같이 데리고 오면서, 말레이시아에서 이들의 인구는 급증하게 된다. 문제는 이 노동자들이 돌아가지 않고 말레이시아에 눌러앉으면서 생겼다. 물론 처음에 이들은 돈이나 벌러온 것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본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인도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간의 갈등으로 나라가 분단되고, 중국은 좌우대립으로 잘못하면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자기들 나라가 좋아질 때까지는 여기서 살자고 했던 것이 그만, 1946년 말라야 연합의 신설과 함께 말라야 국적이 자동적으로 주어지면서 더 이상 본국 국적자로 유지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기에 말레이인들은 자기들이 오랫동안 터를 잡아왔었고 명실공히 이 땅의 자손인데 이방인들이 와서 우리나라를 빼앗는다는 인식이 생겨 반발이 일어났고 결국 이는 말라야 연합의 해체로 이어졌다.

    이런 와중에 1948년 신설된 말라야 연방에서 부미푸트라 정책 비스무리한 것을 시행한다. 물론 상술되어있듯 '부미푸트라 정책'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다만 전후적 차이는 전에는 "말레이인을 우대하되 외국인은 받는다"지만, 후에는 "말레이인을 보호하고자 외국인을 막는다"가 되었다. 여튼 1957년 말라야 연방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지만, 바로 영역 확장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말레이인의 비중이 매우 약했기 때문. 당시에는 말레이인이 50%'아슬아슬하게 넘기는 수준이라, 말레이인을 우대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말레이인을 비롯한 원주민의 수를 늘릴 수밖에 없었는데, 막상 그렇다고 애를 강제로 낳으라는 뻘짓을 하기에는 좀 그렇고, 영토를 확장하여 원주민 수를 늘려보고자 한 것이다. 사바와 사라왁, 브루나이에는 말레이인 민족도 꽤 있고, 말레이계 민족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원주민 우대 정책을 내세워 사바, 사라왁의 원주민들(민족적 말레이인이 아닌 말레이계통 민족 포함)과 본토의 말레이인에게 동족 의식을 갖게 함으로서 중국계를 억누르고자 한 것이다. 그리하여 1963년 말레이시아가 신설되었지만, 가장 가까운 새로운 멤버였던 싱가포르가 큰 문제. 원주민의 수가 50%에서 60%대로 늘어났으니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는데...당연히 싱가포르에서 반발이 있었다. 왜냐하면 싱가포르는 중국계가 압도적 다수인 도시였기 때문. 싱가포르의 총리였던 리콴유"말레이시아인의 말레이시아"를 주장하며, 이러한 정책을 비판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연방정부는 "말레이인의 말레이시아"였다. 결국 대립하다가, 2년 뒤 정부는 싱가포르를 쫓아내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경위와 도시국가라는 한계 때문에 싱가포르는 인종차별정책을 쓰지 않기로 해 중국계들이 꽤 많이 갔으니 말레이시아 정부나 말레이계 입장에선 꼭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렇듯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며 살고 있다. 화교가 제일 많던 싱가포르는 독립했지만 페낭은 여전히 말레이시아의 한 도시로 지금까지 발전해 왔는데 내가 페낭에서 만난 몇몇 그랩기사들은 싱가포르와 페낭을 비교하며 페낭이 전통 문화인 페라나칸 문화를 잘 유지하고 있는 도시라며 자랑하기 까지 했다. 그렇다 조지타운은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오래된 건축물을 보존하면서 현대적인 것들과 잘 조화시켜 도시를 지켜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3. 말레이시아 간단한 회화

    말레이어는 영어 알파벳을 사용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말레이어를 사용할 일이 별로 없지만 식당에서 식사 후, 그랩택시에서 내릴 때 말레이어를 사용하면 상당히 좋아합니다. 현지에서 살고 있는 선배 말에 의하면 말레이시아에서는 물건 값 흥정을 거의 하지 않는 다고 합니다. 서로 믿음 안에서 거래한다고 하네요. 그러나 가격표가 없는 것이 문제겠죠. 이때는 흥정을 좀 해야 하는데 관광객에게는 현지인보다 조금 비싸게 받기도 한답니다. 이때 말레이어를 조금이라도 한다면 현지 거주중인 외국인이라고 생각해서 현지가격으로 판매를 한다고 하네요.

     

    Apa khabar?(아빠 까바르) - 일반적인 인사

    Selamat pagi(슬라맛 빠기) - Good morning

    Selamat tenga hari(슬라맛 뜽아 하리) - (12-2pm) Good afternoon

    Selamat petang(슬라맛 쁘땅) - (2-7pm) Good evening

    Selamat malam(슬라맛 말람) - (7pm이후) Good night

    감사합니다. Terima kasih (뜨리마 까시)

    저도요 sama sama (사마사마) / You’re welcome

    미안합니다 minta maaf (민따 마앞) 길을 헤치고 지나갈 때

    괜찮습니다. Tidak apa apa (띠닥 아파 아파)

    실례합니다. pemisi (뻐르미시) / 물건사기 전, 식당에서 주문 전 사용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Saya dari Korea.(사야 다리 꼬레아)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Saya orang Korea. (사야 오랑 꼬레아)

    제 이름은 ____입니다 Nama saya ___ (나마 사야 ___)

    맛있습니다. Sedap (스답)

    이거 주세요. Tolong beri ini.(똘롱 버리 이니)

    얼마입니까? Berapa (harga) ini?(브라빠 (하르가) 이니)

    비쌉니다. Mahal (마할) / 싸다 Murah (무라)

    가격을 깍아 줄수 있나요? Bolehkah potong harga ini? (볼레까 뽀똥 하르가 이니)

    이것을 사고 싶습니다. Saya mau beli ini (사야 마우 블리 이니)

    화장실이 어디에요? Di mana tandas? (디 마나 딴다스)

     

    4. 페낭에서 가 볼만한 곳

    조지타운

    페낭 섬 북서쪽에 위치한 섬의 주도로, 조지타운을 '페낭'이라고 하기도 한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관사, 교회와 불교사원, 힌두교 사원 등이 한곳에 자리한 동서양 문화 공존의 도시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표적 건축물은 콘웰리스 요새, 구콩씨 사원, 왓 차야 망깔라람 등이다. 구콩씨 사원은 페낭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중국 사원이다. 콩씨는 사원을 겸한 중국의 전통 가옥을 말하는데, 구콩씨 사원은 구씨 일가의 전통가옥이자 사원이다. 정교한 장식과 화려한 채색이 아름다운 사원 안의 미니박물관에는 구씨 일가의 내력과 골동품을 전시한다. 근처에는 얍씨 일가의 사원인 얍콩씨 사원도 있다. 18세기에 건축된 콘월리스 요새는 별 모양의 견고한 구조가 특징이다. 요새의 화약고는 현재 갤러리로 쓰이고 있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와불이 있다는 왓 차야 망깔라람은 1900년에 건립되었다. 금빛의 화려함을 뽐내는 태국식 불교 사원으로, 이곳의 와불은 길이가 33m에 달한다. 1801년에 세워진 카피탄 클링 모스크도 눈길을 끈다. 모스크에서 인도 무굴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미를 감상할 수 있다. 서양식 교회도 있는데, 1818년에 세워진,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회 교회라는 세인트 조지 교회다. 이외에도 영국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페낭 시티홀과 타운 홀 등 페낭을 대표하는 서양 건축물도 있다. 1965년에 개관한 페낭 박물관에서 페낭의 역사를 말해주는 다양한 전시물을 구경할 수 있다.

    쿠콩시 사원

     

    피트 거리 남쪽 카논 광장에 자리 잡고 있다. '쿠 일족의 집회소'라는 뜻인데, 중국에서 이주해 온 쿠씨 일가의 후예들이 조상의 사당과 집회소로 사용하기 위하여 지었다. 지금의 건물은 1894년 화재 이후 규모를 좀 작게 하여 1902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피낭섬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이며, 화려한 지붕 장식과 벽기둥의 조각이 눈에 띈다. 사당 1층에는 쿠씨 일가의 역사적 자료와 350년이 넘은 중국 골동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사당 입구 오른쪽에는 그들 조상의 위패가 진열되어 있다.

     

    페라나칸 맨션

     

    말레이 반도로 이주해 온 중국인 남성과 말레이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을 페라나칸이라고 하며 남성을 바바(baba), 여성은 논야(nonya)라고 부른다. 그 외에도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영국,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문화가 가미되었다. 페라나칸은 싱가포르 문화의 뿌리이다. 예전에 중국인 남편과 말레이시아인 부인이 함께 실제 살던 호화 주택이 이제는 하나의 박물관으로 만들어져서 실제 거주했던 모습들을 구경할 수 있다. 고가의 도자기, 의상, 골동품 등 다양한 수집품들을 볼 수 있고 문화양식도 중국식, 말레이시아식, 서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페낭 힐

     

    해발 830m 높이의 언덕으로, 정상에서 페낭 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페낭 힐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후니쿨라라는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좋다. 후니쿨라는 관광 목적뿐 아니라 페낭 힐로 화물을 이송할 때 중요 수단이다. 45도 경사로 된 언덕을 올라가는 케이블카는 울창한 대나무 숲 속을 약 30분간 이동한다. 올라가는 길에는 다양한 식물과 원숭이 무리들도 볼 수 있다. 케이블카는 중간 지점인 방갈로에서 한번 갈아타야 정상으로 이동할 수 있다. 페낭 힐은 지표면보다 체감 온도가 5도 정도 낮아 선선한 편이다. 날이 좋으면 조지 타운과 믈라카 해협까지 볼 수 있다. 언덕 위에는 페낭힐 모스크와 매점, 식당 등의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다.

    보태니컬 가든

     

    조지타운 끝에 위치한 페낭 식물원. 시내에서 가까워 찾아가기도 쉽고 아름다운 식물들이 많아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동남아시아의 열대우림이 우거진 아름다운 정원으로 '폭포 정원'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며, 페낭 한가운데 위치한 푸른 숲이라고 하여 페낭의 '푸른 폐부'라고도 불린다. 12개의 주요 방문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매력은 물론 신선한 공기를 듬뿍 마셔볼 수 있도록 천천히 오래 걸어보며 다니도록 하자. 새벽 일찍 문을 열기에 이른 아침 방문을 더욱 추천한다. 현지인들이 운동하고 산책하는 곳으로 많이 방문한다.

    5. 말레이시아 여행팁

    1. 식당 중 뷔페로 운영되는 곳이 많음 :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선호하는 음식도 달라 뷔폐가 인기가 좋음.

    2. 페낭은 우리나라 전라도처럼 음식 맛있기로 유명함. 중국인 비율이 높아서 이기도 하고 인도인도 상당히 많이 거주하다보니 음식이 다양하게 발전함.

    3. 아무리 지나가는 어린이가 귀여워도 손으로 머리를 만지면 안 됩니다. 머리에 영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로 상대방의 등을 만져도 안 되요

    4. 절대로 왼손으로 인사하면 안 됩니다. 더럽다고 생각하고 악수는 여자와는 하면 안 됩니다. 또한 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르키지 말아야 합니다. 꼭 해야 한다면 엄지손가락으로..

    5. 허락 없이 사람의 사진을 찍지 마세요.

    6. 환전은 현지에서 5만원권으로 하시는 것이 좋고 한번에 많이 하지 마세요. 다시 한화로 바꿀려면 비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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